대량생산, 대량소비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다는 광고업자들의 선전 문구 속에서 빈곤은 지워집니다. 가난한 자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소비 상품'은 모두, 곧 우리 중 어느 누군가의 필요를 훨씬 넘어섭니다. 특히, 수백만의 사람이 단지 생존을 위해 날마다 마치 전쟁을 치르듯 살 수밖에 없는 그런 세상 속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호사스런 경제의 한 측면에 불과합니다. 부자들을 즐겁게 할 물건을 만들어 내는 회사들은 부자들을 방어해 줄 물건도 생산합니다. 어린이 전자 오락기를 생산하는 텍사스 인스트루먼츠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자녀들을 목표로 삼았던 유도 미사일 체계도 만들어냅니다. 제너럴일렉트릭은 모닝커피를 만들어 줄 커피메이커뿐 아니라 선제공격용 핵무기인 마크 12-A 미사일도 제작합니다.
새로운 전체주의의 발현
투박한 전체주의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이 잇따르는 끈질긴 설득은 이 게걸스런 소비 사회에 사는 개개인의 가치관을 사고, 정신을 형성합니다. 이러한 영성 개발은 좀더 많은 것에 대한 욕구를 돋웁니다. 이러한 자극은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물질주의적 생활 방식이 전 세계에 끼치는 영향들에 대해 우리 눈을 멀게 하고우리 마음을 굳게 하면서 일어납니다. 사실상 대부분의 광고는 일곱 가지대죄(seven deadlysins: 교만, 호색, 시기, 분노, 탐욕, 폭식,나태)라고 알려진 것들 중 한두 개 이상의 욕구에 호소합니다. 이러한 광고들에 둘러싸인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은 과연 뭔가 다른 점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심지어 텔레비전에 나와 설교를 하는 사람들까지도 번영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은근히 빈곤이 하나님의 은총을 잃어버린 표시라고 말합니다.
치명적인 관계의 단절
우리는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소외가 근본적으로 깨어진 관계로부터 발생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웃과 지구와 하나님과의 언약에 대한 감각을 상실했습니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무관심,지구 환경 파괴, 인종적이고 성적인 착취에 대한 문화적 용인, 낙태에 대한 승인, 적대 진영 주민들에 대한 핵무기 대량 학살을 기꺼이 자행하려는 의도 사이에 있는 영적인 연결성들을 볼 수 없습니다면, 사실상 우리는 끔찍한 근시안을 갖고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우리에게는 새로운 시작이 필요합니다. 성경에서 새로운 시작은 회개와 함께 시작됩니다. 회개는 회심의 과정에서 첫 발걸음을 떼는 일입니다. 회개는 과거를 정직하게 직면하고 그것에서 돌아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회심은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해 완전히 돌아서서 새
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길에 발을 들여 놓을 때, 옛 가치관과 습관은 뒤에 남겨집니다.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습니다.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겠습니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역사속에서의 회심
이 책의 과제는 우리의 역사적 상황에서 회심이 의미하는 바를 발견하는 데 있습니다. 회심에 관한 수많은 문서가 심리학적인 접근 방식을 채택합니다. 이는 종교적 체험과 행태 과학 사이의 관계를 평가하는 방식을 통해 이뤄집니다. 다른 연구들은 회심의 다양한 차원을 총괄적으로 정리하면서 조직적인 결과물을 내어 놓으려고 시도합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가 사용하는 접근 방식은 회심의 성경적 의미를 찾아내고 이를 우리가 마주치는 특정한 역사에 적용하는 방식입니다. 저자가 답하려고 하는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회심의 의미는 오늘날 무엇입니까? 역사 속의 회심(conversion-in-history)에 대한 나 자신의 이해는 수년간의 분투를 통해 얻은 것입니다. 저자가 복음주의권에서 양육받을 때에 핵심 사항은 바로 회심이었습니다. 복음주의권에서 자라난 많은 아이와 마찬가지로, 저자는 어린 나이에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회심은 어떠한 구체적인 역사적 실체와는 거의 아무런 관련도 없었습니다. 회심은 개인적이고 추상적이었으며, 무엇보다도 몇몇 개인적인 습관과 관행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오직 회심
사람을 위협하여 회심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그러나 사람들을 회심으로 초대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만 미래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고민하는 사람들, 특별히 교회 안에 있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다가설 수 있습니다.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회심입니다. 우리가 대면하는 모든 질문은 회심을 가리킵니다. 조금이라도 회심에 이르지 못한 것은 충분할 수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