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과 주일
십계명 중 어떤 계명도 폐지하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완전한 숫자 10이 아직도 있으며 세상 끝 날까지 있을 것이라 마땅히 생각해야 합니다.구약시대 안식일 제도의 본질적 의미는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는 것으로, 신약시대 기독교에서는 주일 제도가 되었다고 찰스 핫지는 주장합니다.안식일에 대한 율법이 기독교 교회의 오류 없는 설립자들인 사도들의 새로운 시대에 계속되었고, 또 포함 되었다는 것입니다.그리스도 부활이라는 구속 경륜의 핵심적 사실과 관련 되어 있습니다.주일에 일하는 것이 주일에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더 큰 죄입니다.주일성수의 근거가 하나님을 향한 경배의 의무라는 사실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까 이런 이상한 적용이 생겨난 것입니다.율법의 정신이 하나님께 대한 공경과 이웃을 향한 사랑을 분리하지 않고 있다는 성경적 강조를 생각할 때, 이러한 논쟁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청교도들은 신약시대의 주일은 이스라엘에게 율법으로 주어진 구약시대의 안식일이 온 인류에게 하나님 나라의 완성으로 이루어질 영원한 안식으로 이행하는 과정이라고 보았습니다.
복음을 주일성수의 개념을 설정하고자한 것입니다언약의 편무성과 쌍무성중 칼빈과 개혁자들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강조하였고,청교도들은 이 두 가지 입장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시도했습니다.인간이 행위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마땅히 언약관계에 충실할 의무가 있으며 이로써 그들의 구원의 진실성이 입증된다고 보았던 것입이다.칼빈이 예배, 전례, 주일성수에 관하여 언약적 관점을 유지하면서 포용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이 문제를 아디아포라와 관련지었는데, 아디아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명백히 규정된 바 없고 종교적으로도 어떤 행동을 규제할 보편타당한 근거가 없으며, 도덕적으로 중립 된 것이어서 때에 따라 작위와 부작위가 허용되는 것입니다.따라서 각자 자신의 양심이 가르치는 바에 따라 자유롭게 행할 수 있는 사항에 속하는 것을 의미합니다.그날을 육체의 쉼 속에서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충분히 역사하실 수 있는 날로 삼기 위함입니다.
율법 폐기론
주일은 안식일이 본래 의도했던 목적과 내용이 완성되는 날이라고 설명 하며,성경이 구약시대에 안식일 제도를 통해 옛 창조를 기념하기를 명했다면, 이제 신약시대에는 주일 제도를 통해 새 창조를 기념하기를 명하고 있다고 조나단 에드워즈는 말했습니다.주일에 대한 청교도들의 해석은 구약시대의 안식일이 한 주간의 마지막 날이라고 보았고, 신약시대의 주일이 한 주간의 첫째 날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출애굽기에서는 창조 사역 후 하나님이 안식하신 것을 기리는 것인데 비해, 신명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애굽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내신 것을 기리는 것닙니다.안식일을 지키는 신학적 동기가 하나님의 안식에서 하나님의 구속으로 그 축이 이동을 한 것입니다.상당 부분의 아디아포라가 포함된 신앙의 문제들에 대하여 약370년 전 영국에서 작성된 기준 문서를 그대로 따른다고 간단히 답하는 것은 신앙의 역사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너무나 쉽게 넘어가는 졀정입니다. 주일의 신학적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구약 성경 전체를 관통하여 흐르고 있는 구속사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모드 지체들은 우연히 다른 사람들의 개인 규칙을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을 깊이 존중하도록 성숙하게 훈련되어야 랍니다.우리 시대의 신앙 고백을 작성해야 합니다.주일의 신학적 의미를 가르쳐야 합니다.율법적 바리새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자유주의적 방종에 대한 경계가 필요 합니다.교회는 신자들의 영적 변화를 위해 힘써야 합니다.성경과 신학적 탐구를 통해 발견한 진리들을 건전한 이성을 사용하여 조직화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실천해야 합니다.박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청교도들의 견고한 삶은 확고한 교리적 지식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빛과 그림자
신학적 논제에 대해 구속사의 전개에 따라 나타난 계시의 점진성을 고려하여 통시적으로 성경의 책별로 답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계시를 조직하여 평면적으로 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하나님 자신에 대한 지식과 인간과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일들에 관한 신적 지혜를 의미 합니다.그리스도를 향하여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잘 사는 것이 신학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의미에서 교회는 신학교가 되어야 합니다.교회가 현대의 반지성적 사조 안에서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는, 신자들에게 기독교 사상의 탁월성과 유장함을 가르쳐 그들이 '작은 기독교 사상가'가 되게 하여야 합니다. 주일'은 문자 그대로 주님의 날입니다.로마시대의 태양신 숭배 사상과 관련을 가지고 종교적으로 이교적 혼합을 한 것이 아닙니다.오히려 로마시대의 이교적 절기를 기독교의 내용으로 점령한 선교적 정황화의 성공적 사례임입니다.주일 안에서 그리스도가 현재적으로 이미 우리와 함께 하시는 행복을 누립니다.구약의 안식일은 주일이 드러낼 하나님의 구속 경륜의 그림자입니다.구약의 안식일이 희미한 촛불이라면,신약의 주일은 그날의 주인이신 리스도 때문에 찬란한 빛이고, 그 주일이 바라보는 영원한 안식을 누릴 뿐 아니라, 종말에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행복을 미리 앞당겨,진리와 성령 안에서 실제로 누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