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지배
죄는 '독 이빨'을 가지고 있으며 일단 한 번 목어버린 모든 것을 통하여 그 독을 생각 속에 뿜어 넣을 수 있습니다.특히 은밀하게 생각하여 즐거워 하고 있어그 마음이 더러워지기만 하면 여지 없습니다.죄의 소재가 되는 것을 생각하지 마십시오.오히려 지금 긴요하게 필요로 하는 것은 죄를 짓게 하는 시험에서 구출 될 방도들을 많이 생각하는 것입니다.장래의 영광스러운 상태와 하늘에 속한 것들을 생각한다는 것이 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그 일에 용기를 가지지 못하는 것은무지하고 이해가 부족하며,눈에 보이지 않은 것들에 관한 개념과 일관성 있는 이해가 부족한 것입니다.그것은 거리에 사자가 있다고 무서워서 나가지 못하는 사람과도 같습니다.위에 있는 것들을 묵상하지 않으면 생각이 영적으로 돌아가는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죄에서 완전하게 자유로워지는 하늘의 상태를 바라보고 마음의 힘을 얻지 못하고 그 속에서 마음의 시원함을 얻지 못한다면,죄에 대하여 염려하는 그들의 생각이 온당한 것은 아닙니다.우리가 위에 것들을 완전하게 보게 될 것인데.그 능력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리고 완전하게 보게 될 것인데 그 능력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리고 있는 믿음의 빛과는 다른 어떤 절대적인 은혜가 아닙니다.다만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믿음의 빛이 가지고 있는 불완전함이 제거 된 결과일 뿐일 것입니다.뒤로 물러감으로 자기가 이미 해 놓은 것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합니다.
은혜의 지배
그래서 저는 매일 말씀을 들으면서 그 일을 고수하여 나가고 있습니다.잠시 그런 일을 등한히 하면, 냉담하여지고그러한 일에 지각을 잃어버려,그와 유사해 보이는 것이 마치 그 일인 양 여겨져 잘못 된 만족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하나님의 말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하려는 인위적인 아름다움에 우리 자신의 마음이 팔리지 않아야 합니다.그리스도 우리의 생각과 우리 묵상의 대상이신 그리스도의 제안이 항상 같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영적으로 생각이 돌아간다는 것은 하늘에 속한 것들,위에 있는 것들,특히 하나님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를 즐거움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연약과 악에서 벗어나기 위한 부단한 기도와,양심을 속이거나 의무를 게을리 하는 일 없이 그러한 악을 피하기 위하여 신중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고난에 임하는 훨씬 더 좋은 준비입니다.죄를 사랑하는 것이 마음에서 제거되지 않고는,하나님을 인정하는 사상이그들의 마음에 고정적으로 정착되지 않을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의 정욕이 격하게 작용하지 못하게 제한선을 두십니다.여기까지만 나아가고 더 이상은 넘어 가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그들 앞에 장애를 놓아서 그러한 성향을 제재하시고 환난을 통하여 죄의 태를 닫으십니다.하나님의 탁월하심을 묵상할 때 ,시험과 죄로 인하여 즐거움이 쓰게 느껴지게 될 것입니다.이때 침묵을 지킵니다.자기에게 고통스럽고 슬픈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서와 거룩한 생각으로 즐겁게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이 아니면 하나님께 우리 마음을 드린 것이 전혀 아닙니다.바로 우리 마음의 정서와 생각들이 하나님을 기쁨으로 향하면, 그것이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며 바로 그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허망한 생각과 상상이 침범하지 못하게영혼의 내면을 항상 계속 살피는 일이 요구되는 것입니다.구약시대에는 모든 것들 중에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희생제사..피와 내장의 기름을 요구 하셨습니다.최고가 아니라면 하나님께서는 아무 것도 받지 않으셨습니다.우리의 시간도 그러하여야 합니다.여러분의 시간과 삶 중에서 더 나은 것을 어떻게 보냅니까?영적인 것들에 대한 새로운 지각과 미각을 가지려는 간절한 마음의 소원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생각들이 갈피를 잃게 될 때 간절히 절규하는 기도들로 보충하기 바랍니다.그 자체로는 아무리 선하고 가치 있고 칭찬할만 하더라도 다른 이들에거 무엇을 할 때,그 일을 하면서 마음도 함께 있어야 합니다.살아 있는 마음이 없이 하면 그들을 경멸하는 것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어떤 마음의 정서로부터도 영혼과 양심이 큰 해를 입는 경우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말하자면 정서는 죄와 은혜가 싸우는 전장일 뿐 입니다.그래서 마음이 새로워지면 그 정서는 영적인 용도로 사용이 되는 것입니다.저희가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죄를 받을 것이라.생명 있는 주도적인 은혜의 원리와 은혜의 습관에 속한 것이 영혼에 심기우기 전에는 영혼의 영적인 변화란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가책들이 주는 고통들을 무마시키는 기도가 되지 않도록 살펴야 합니다.이러한 기도는 병든 사람들이 열이 나면 찬물을 들이켜 얻는 효과와 같은 것입니다.심지어 거룩한 일들을 말하는 것에도 말의 성찬을 자랑하는 시대가 있습니다.
죄 죽임
순종의 모든 의무들을 지키고,시험과의 갈등과 시험을 이기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안에서 행하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당신의 얼굴을 감추실 때,이전의 상태로 회복시키시려는 목적으로 기도를 시키실 때 일 수 있으며,이전에 도달 했던 상태보다 더 좋은 상태에 이르게 하시려는 의도가 거기에 딸려 있습니다.당신이 죄안에 살고 있으면,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현재의 환경과 이러저러한 상황이 벗어나면 이전의 사랑과 기쁜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이 또한 거짓 된 개념입니다.이 역시 불신앙의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택과 자비하심으로 감동을 많이 받고는,그 때문에 자기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상정해 버립니다. 그러나 이런 사랑은 마귀가 욥을 거짓되지 비난하면서 참소할 때 말한 사랑밖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하나님의 사랑과 선하 심의 탁월하심을 알아만 하나님께 매력을 느끼며, 하나님을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항상 경계하지 않으면 몸의 외적인 감각기관들과 지체들이 죄와 어리석음을 섬기려고늘 준비하고 있음을 알아 보는 일은 아주 유익한 일일 것입니다.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폐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