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지식 건축법, 지성적인 기독교인이 되는 법

GraceFull_book 2022. 10. 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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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성주의

잘 생각하는 것은 중요합니다.진리와 영성은 하나입니다.진리를 아는 것은 곧 진리를 행하는 것입니다.영적이 된다는 것은 곧 진리를 알고 행하는 것입니다.대중적 버전보다 더 나쁜 지성인이 하나 있습니다.성경 근본주의에 따른 지성이 바로 그것 입니다.진리를 훤히 꿰뚫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입니다.그리스도인은 학문과 철학의 세계를 피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해 왔습니다.이것이 반지성주의입니다.바울이 반대한 것은 선한 사고가 아니라 부정확한 사고, 특히 자체적 정확성을 내세우는 부류의 사고입니다.지능이란 단순히 여러 상황에서 머리를 잘 쓸 줄 아는 정신 능력입니다.의사, 변호사, 엔지니어등 대다수 전문직 종사자 이들은 사고를 위해 살지 않고 사고를 먹고사는 사람들입니다.지성에는 그런 사고에 대한 거의 거의 종교적인 헌신이 있습니다.장난기로 균형을 잡아 주지 않으면, 그런 사고는 순식간에 이데올로기적 광신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참된 지성인들은 사고와 재미있게 노는 것을 즐겨합니다.참된 지성인은 간혹, 뭔가를 보고, 옳은 말을 하고 여태까지 거의 누구도 지니지 못했던 통찰도 품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배울 뿐만 아니라 배운 바를 이미 알고 있는 것과 연관시킬 때, 우리는 지성의 성장과 확장을 느끼게 됩니다.지성의 철학의 참 대표자는 분석하기보다 규정짓는 쪽입니다.더없이 신비롭고 불가해한 것을 인간이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따라갑니다.넘기 힘든 구분선들을 인식하기도 합니다.언어가 인간에게 주어진 값진 선물이라면, 논리력은 그 언어를 우리가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줍니다.지식이란 여러 학문에서 따로따로 주워 모은 단편적 조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모든 지식은 하나의 전체를 이루게 됩니다.

주제가 하나인 까닳입니다.그러므로, 그분을 생각하지 않고는 참으로 온전히 지식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도덕성을 겸비한 지성만이 가장 온전한 진리에 접근 할 수 있습니다.지성의 완성을 보이는 사고는 편파적이지 않고 인내심과 대단한 침착함을 보입니다.분명한 확신에 도달하면, 정말 편협한 고집과 소소함에서의 해방도 있고, 또 자신이 아는 것이 신앙의 확신만큼이나 확실하다는 의식도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알 뿐 아니라 알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지성인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바르게 생각할 때 사상가는 한 걸음씩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지 자신의 헛된 망상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또한 지성인은 행동해야 합니다.만일 스스로 안다고 주장하는 것에 맞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정말로 아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우리 그리스도인은 우리가 진리로 믿는 것이 우리 삶 속에 통합되어야 함을 알고 있습니다.지성인의 삶의 특징은 일상생활에 소용되도록 사고를 맞추고, 사고에 대한 사랑 즉, 사랑에 빠진 지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지성인 사고를 뒤집고, 사고의 함축된 의미를 보고, 사고를 쌓아 올리고, 사고를 배열합니다.지성인은 정신적인 회전식 건조기와 같습니다.사고와 그 일당에 대한 지속적인 되새김질만큼 지성인의 특징이 되는 것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곧 진리

오성은 추론적 사고력, 찾고 또 찾고 추론하고 다듬고 결론짓는 능력입니다.지성은 그냥 보는 능력입니다.진리는 눈앞의 경치처럼 저절로 나타납니다. 지성은 사안의 존재를 듣습니다.성숙한 사고에는 오성과 지성을 둘 다 포함합니다.지성이 편안 할 때, 그냥 주목하거나 투영하고 있을 때,끝없는 복도로 사고를 추적하기 보다는 수용적 자세로 사고의 추적에 자신을 맡겨 실체가 내게 다가오게 할 때, 생겨난다는 점만 주목하면 됩니다.마음이 하나님께 뿌리를 둘 때 사고는 자유로이 놀 수 있습니다.자유로이 재미를 누릴 수 있습니다.사고는 결과를 낳습니다.적절하게 적용된 참된 사고라면,지성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는 사람, 이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말 속에는 도덕적 한계선, 하나님 나라의 비전,인생의 방향뿐 아니라 심오한 존재론적, 인식론적 의미까지 함축 되어 있습니다.하나님의 영광이 곧 진리입니다.하나님의 영광이 진리임을 명심하고 범사에 거기에 따라야 합니다.진리를 향한 열정, 거룩을 향한 열정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진리란 기꺼이 진리를 행하려는 자들에게만 오는 법입니다.지식의 보상은 덕입니다.진리는,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에 복종하는 자들을 찾아오며, 이 사랑에 덕이 빠질 수 없습니다.지성은 도구일 뿐이며,지성의 영향력의 본질을 결정하는 것은 지성을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입니다.바르게 판단하려면 훌륭해져야 합니다.진리의 깨달음은 정욕 즉, 자기중심적인 욕망의 아우성이 가라앉을 때에만 찾아올 수 있습니다.그 기제에서 빛을 바라는 것은 사고하는 자의 인격이 아니라 진리입니다.도덕이 지성을 지배하는 것입니다.우리는 자신의 도덕적 삶이 알도록 허용하는 만큼만 알 수 있습니다.마음이 청결한 자들만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않습니다.지식의 초심자는 지식이 자신의 사고 속에 깊이 가라앉게 해야 합니다.무엇에 대해서든 참 된 생각이면 돠는 것입니다.우리는 행동으로 옮기는 만큼만 알게 됩니다.우리는 순종하는 만큼만 믿습니다.진리란,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한 알 수 없습니다.

지성 훈련

생각하기 위해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선입견을 버려야 합니다.참된 지식은 실체를 아는 지식입니다.이런 의미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우리의 의식을 뚫고 들어와, 이제 우리 모두는 존재하는 것은 말뿐이라고 생각하게 이르렀습니다.이 사도 안에서는 모든 것이 관념적일 뿐 실체는 하나도 없습니다.유명론은 중단되어야 합니다.실재하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거기 계시는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프란시스 쉐퍼는 놀라운 혜안으로 말했습니다.바르트는 예수의 말씀과 예수의 행위를 나눌 수 없다고 했습니다.아슬란을 통한 구속은 말이 아니라 사건입니다.존재가 지식을 앞서며 지식보다 중요합니다.포스트모더니즘이 실체를 언어적 구성물 즉, 해석학과 기호학으로 환원시키고 모더니즘이 존재보다 지식을 강조하는 인식론과 자연과학으로 대변되는 시대에 이제 존재의 성격적 우선성을 재천명해야 할 때입니다.나는 스스로 있는 자는, 존재하시는 이 분은 말씀이요 또한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그분은 말씀하실 때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십니다.그리스도 안의 하나님께 우선 주목 하는 것,그것이 사고하는 그리스도인의 급선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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