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두려움
내가 실수해도 그분은 나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나는 그분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깨닫고글로 쓰면서도 증인이 되지 못하고 나 자신은 결국 버림받을까 봐 두렵습니다. 왕이 아니라 말쟁이가 되고, 죽는순간까지 예수님과 동행하는 그분의 제자가 아니라 진리에 대해 논쟁만 벌이는 자가 될까 봐 두렵습니다.지옥의 유일한 원리는 이것입니다. 나는 내 것입니다.그리스도를 알고 내면에 모셔 들여 구원받는 대신 그들은 그저 자신이 신자인지, 대속을 정말 믿는지, 죄를 정말 뉘우치는지를 놓고 영혼에 병이 나도록 자기 성찰을해대느라 점점 쇠약해져 갑니다. 이것은 두뇌가 미치는길, 마음이 절망에 이르는 길입니다.스스로에게 자신이 주님을 믿는지 안 믿는지 묻지 말고,오늘 그분이 하라 명하셔서 한 일, 혹은 그분이 하지말라하셔서 삼간 일이 하나라도 있는지 물어보십시오.그분이 하시는 말씀을 하나도 행하지 않으면서 그 분을 믿는다거나 믿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일 뿐입니다.내가 섬기는 성자는 인간이신 하나님, 성부로부터 존재와 능력을 취하시는 유일한 신인, 성부와 동등한 아들이시면서도 아버지의 신하이신 분입니다.히브리인들은 어떻게 그들의 정체성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금송아지를 섬기는 일이 옳다고 판단할 수 있었을까요? 그런 상태라면 차라리 두려움이 낫습니다. 두려움은 육욕보다 고상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하나님을 모르는 것보다 낫고, 손으로 만든 신들을 섬기는 것보다 낫습니다.두려움에서 나온 예배는 상당히 수준이 낮긴 하지만 참됩니다. 하나님은 영과 진리의예배만 받으시므로 두려움에서 나온 예배를 받지 않으시지만, 그래도 귀하게는 보십니다. 그분은 인간을 현재의 모습으로만 보시는 게 아니라 앞으로 될 모습으로 보시며, 앞으로 될 모습만이 아니라 지금 성장하는 모습,성장의 잠재력까지 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형상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고 그 형상에 이르도록 성장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움직임의 한 단계씩만 놓고 보면 별 가치가 없어 보여도, 그것들이 천 개만 모이면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그것들이 모여 꼭 필요한 연속적 이행 과정을 이루고 무한한 흐름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퇴보가 계속된다면 결국 악마가 될 것이고, 성장이 계속된다면 성인이 될것입니다.그분의 형상이 내 안에서 아무리 훼손되었어도, 그것은그분의 형상이요 사라지지 않고 남아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해줍니다. 내 안에 있는 완전한 분의 형상이망가졌으니 내가 악하고 비참해질 수밖에 없지요. 악해지는 것도 선한 본질에 힘입을 때만 가능합니다. 분명히그렇습니다.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동물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만드셨지만 하나님의 자녀라 부르지 않습니까"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나에게는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동물들에겐 책임이 없습니다.나는 내 책임을 굳게 붙듭니다. 그것이 내 자녀 됨을 확증해 줍니다.동물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니 동물들을 근거로 어떤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두 가지를 확신합니다. 하나님이 신실하신 창조주시라는 것, 그리고 내가하나님의 자녀라는 권리를 일찍 주장할수록 동물들에게도 더 낫다는 것입니다. 책임은 없지만 그들 역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자기부인
자아가 우리에게 주어진 이유는 그것을 제물로 바치게하려 함입니다. 자아가 우리의 소유인 이유는 우리도 그리스도처럼 뭔가 내놓을 것이 있게 하려 함입니다. 우리는 자아를 괴롭힐 게 아니라 부인해야 합니다. 반대할 것이 아니라 완전히 내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자아 때문에괴로울 일이 없어집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자아에 반대하지 말고 버리라니?" 이런 말입니다. 우리 안에서 다스리고, 결정하고, 일을 벌이는 요소로서의 자아는 완전히 거부하고 내버리고 부인해야 합니다. 그것이더 이상 우리 행동을 다스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가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이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실까?"를 생각해야합니다.개인적인 것들을 움켜쥐고 추구하고 갈망하는 마음이의지로 발현되어서는 안 됩니다. 훌륭하다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채우기 위해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 행동의 동기가 야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남을 앞서고 싶은 마음이 살아날 틈을 잠시도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