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사냥개
존 스토트가 그리스도인이 된 이유는 천국의 사냥개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끈질기게 그를 쫓아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 때문인 것입니다.먹이를 쫓아가는 이 거룩한 짐승이 마지막 도약을 준비할 때 우리는 떨게 됩니다.
도망칠 길은 없습니다.하나님의 준엄함을 인간의 온화함보다 따뜻합니다.그분의 강요는 우리를 해방시킵니다.그리스도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두 번째 방법은 저의 패배감을 통해서였습니다.그는 그리스도가 소외되어 있던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키기 위해 죽으셨고, 제 패배를 승리로 바꾸기 위해 죽음에서 부활했다고 설명해주었습니다.포스트모던 문화는 근대성의 자기 과신에 대한 반작용으로 모든 확신을 잃어버리고,객관적 혹은 보편적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합니다.모든 사람에게는 자기 나름의 진리가 있다고 말합니다.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와는 다른 신념이 있는데,그것은 바로 객관적 진리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신념입니다.다른 위대한 영적 지도자들의 경우, 사람들은 그들의 죽음을 그들 삶의 이력의 끝으로 여겨 드립니다.예수님은 죽음이 자기 삶의 핵심이라고 이해하셨음이 분명합니다.제자들은 자신들을 위해 내어주신 예수님의 몸을 기억하며 떡을 들어서 떼어 먹어야 했으며,자신들을 위해 쏟으신 예수님의 피를 기억하며 포도주를 마셔야 했습니다.
십자가 그리스도의 죽으심 그리고 사랑
당신은 아직 죄의 심각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당신은 아직 하나님의 위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하나님은 거룩함과 사랑을 동시에 보여 주실 수 있습니다.바로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해결하신 신적 딜레마입니다.왜냐하면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 자신이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직접 받으셨기 때문입니다.도덕적 감수성이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섭리가 정의롭지 않게 보인다는 사실 때문에 당혹스러워했습니다.이것은 욥기 전체의 주제입니다.즉 하나님의 정의를 입증하고, 불공정하게 보이는 하나님의 방식을 인류에게 정당화시켜야 할 필요가 생깁니다.성경은 이러한 필요에 대해 두 가지 방식으로 대답합니다.우선 성경은 모든 잘못을 바로 잡게 될 미래의 최후의 심판을 제시하고 그 전에 하나님이 악에 대해 조치를 취하지 않으신 이유는 도덕적 무관심 때문이 아니라,그리스도가 오셔서 자신의 죽음으로 그 문제를 다루실 때까지 참고 기다리신 것입니다.이제는 아무도 하나님이 악을 묵과하시고 불공정을 묵과하는 분이라고 비난할 수 없습니다.십자가는 이러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기 정당화입니다.바로 오늘날과 같은 세상 말입니다.플라톤은 오직 인간만이 하늘을 올려다본다고 하였습니다.악의 범위는 우주적입니다 악의 핵심은 자기 중심성입니다.악의 근원은 인간의 마음입니다.악의 결과는 그것이 우리를 더럽힌다는 것입니다.우리는 가장 고상하고 고결할 수 있는 동시에 가장 천박하고 잔인할 수도 있습니다.삶은 재와 영광, 나약함과 변모의 고통스러운 변증법으로 펼쳐져 있습니다.저자는 저자 자신에게도 수수께끼이며, 짜증 나는 불가사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먼지와 영광이라고 하는 이 이상한 이중성을 가진 존재입니다.정치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가 최상의 형태입니다.왜냐하면 이론상으로 민주주의는 인간의 위엄과 부패를 모두 인정하기 때문입니다.정의로울 수 있는 인간의 능력 때문에 민주주의가 가능합니다.그리고 불의를 행하려는 인간의 경향 때문에 민주주의가 필요합니다.우리는 자기 긍정과 자기 부정을 함께 하도록 부름받았으며,어느 때에 어떤 태도가 적합한지를 구분하는 분별력이 필요합니다.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라도 거의 모든 상황을 견딜 수 있습 습니다.인생은 결국 사랑에 대한 것입니다.나에게는 사랑이 있기는한 걸까 하는 생각 하게 되는 책이었습니다.지금의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그분을 위해 살기로 마음 결심했던 그 마음이 아직도 내 안에 있는지 다시금 싶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