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 운동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재발견
토마스의 삶과 신학 활동의 방향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두 가지 요소는 복음주의 운동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재발견이었습니다. 이 두 요소는 토마스가 살았던 13세기의 지적 역동성을 규정한 힘이기도 했다. 복음주의 운동은 성서의 재발견을 통해 성서의 가르침을 철저히 따르려고 한 운동입니다. 이 운동에 동참한 사람들은복음서의 말씀. 즉 "너희 중의 누구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33), "완전하게 되려거든, 네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마 19:21)는 말씀에 따라 자발적 가난을 추구하였습니다. 12세기부터 발도파가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고 복음을 전하며 선도적으로복음주의 운동을 전개하고 널리 확산시켰지만 그들의 급진적이고 반 교회적 태도 때문에 교회 안에서 수용되지 못했습니다. 13세기 초에 이르러, 교회 안에 머물면서 제도권 교회의 복음적 갱신의 효모 역할을 하고자 한 새로운 수도회들이 생겨났습니다. 작은 형제들의 수도회(프란치스코 수도회로 통용되는 수도회의 공식 명칭)와 설교자 수도회(도미니코수도회로 통용되는 수도회의 공식 명칭)가 대표적입니다. 이 두 수도회는 모두 복음적 가난을 철저하게 실천하기 위해 구걸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고자 했던 탁발 수도회였습니다. 기성세대들은 두 수도회를 의심했고 유보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그들이 보여 준 새로운 복음적 삶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고 그들이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 설교에 열광했습니다. 탁발 수도회 운동은 특히 청년들과 문화 엘리트들을 대거 흡수했고, 그 결과 13세기의 파리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의 유명한 교수 대부분은 이 탁발 수도회 출신 수도사들로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공리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공리는 은총은 자연을 제거하지 않고 완성합니다.13세기 대학가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연구가 급속히 확산되어 갈 때,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수용이 기독교사상에 엄청난 도전임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는 이 철학이 기독교 신학과 조화될 수 있는 것인지의 여부를 검토하기 위해 이 철학을 철저히 분석하는 것을 당대의 시대적 과제로 인식하였습니다. 그가 기독교의 복음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관계를 이해한 방식은 흔히 그의 신학 공리로 일컬어지는 "은총은 자연을 제거하지 않고 완성합니다.12에 암시되어 있습니다.은총과 자연의 관계를 이해하는 상이한 관점은 자주 로마 가톨릭교회와 종교 개혁 전통에서 나온 개신교회 사이의 주된 논쟁점으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13 종교개혁자들의 자연 이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구원사적인 자연 개념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연을 타락 이전의 순전한 상태와 타락한 상태로 구분하여 이해했습니다.그는 은총을 타락한 상태의 자연과 대립시켜 자연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로 이해했습니다.반면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개념에 영향을 받아 자연을 구원사적 개념으로 이해하지 않고 그 자체에 있어서의 자연으로 이해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에 의해 존재하는 것들은 그 자체 안에 운동의 원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비자연적 사물과 다르다고 봅니다. 이 점으로부터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을 그 자체에 의해 존재하는 것 안에 있는 운동의 원리이자 원인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physia) 개념을 수용하지만 동시에 넘어섰습니다. 세계를 신의 창조물로 보지 않고 자연 안에 갇혀 영원한 것으로 이해하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토마스는 자연의 작용을 초월하는 초자연적인 실재를 인정하고 자연을 신의 피조물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연 이해에 따라 토마스는 자연을 은총에 앞서 하나님에의해 주어진 것으로 보고, 은총은 자연 위에 주어진 것으로 봅니다. 그 결과, 그는 은총을 자연에 대립는 것으로 보지 않고 완성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철학과 신학의 관계
토마스가 철학과 신학의 관계를 이해하는 방식은 은총은 자연을 제거하지 않고완성한다는 그의 신학 공리가 적용되는 대표적인 예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는 철학을인간 이성을 통해 탐구되는 학문으로 보고 신학은 하나님의 계시에 기초하는 학문으로 이해합니다. 15 다시 말하면 철학은 이성을 통한 학문이고 신학은 하나님의 계시를 믿는 것에서 출발하는 학문입니다. 토마스는 이성과 신앙 둘 다 하나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에 둘 사이에 모순이 있을 수 없다고 본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 보겠습니다.우리에게 무상으로 주입된 신앙의 빛은 하나님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 이성의 빛을 파괴하지 않습니다. 인간 정신의 자연적인 빛이 신앙을 통해 드러난 것들을 보여 주기에는 불충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앙이 우리에게 전화해준 것들이 자연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과 반대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 경우, 둘 중의 하나는 거짓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온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류의 원천이 될것이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