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크마
본서가 다루는 시기 이전의 초대 교부 신학적 관심사는 그리스도론과 삼위일체와 연관된 신론에 집중되어 있었고, 그 직전의 관심사는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 사이에서 벌어진 은총, 원죄 및 자유의지에 관한 논쟁이었다. 그리고 이를 이어 받아 중세 전반기에는 성찬, 예정, 성상, 성령발현(필리오케) 등에 관한 논쟁의 불길이 격렬하게 타올랐다. 이들 중에서 앞의 두 논쟁은 본서가 특별히 부각하고 있는 주제에 속한다.본서의 흥미로운 부분은 특히 은총과 예정(원죄와 의지 문제)과 연루된 중세 신학의 스펙트럼(아우구스티누스주의, 펠라기우스주의, 반(半)펠라기우스주의,격렬한 성찬논쟁 (라드베르의 화체설과 라트랑의 반화체설), 케뤼그마적인 설교(예수의 일대기를 주제로 한 설교)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은총과 자유의지
레랭의 빈켄티우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급진적 견해, 곧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구원인간의 자유의지 거부 및 구원받을 자와 저주받을자에 대한 이중적 예정에 대해 강력한 공격을 가했습니다. 또한 그는 펠라기우스의 비원죄론과 자유의지론도 공박하면서, 이 둘을 종합한 반(半)펠라기우스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그는 교훈(Commonitorium)이라는 저서를 통해서 아우구스티누스를 직접적으로 공격하지는 않고, 그와 그의 제자들을 무명의 '혁신자'라 규정하고 이들의 견해를 반박 하는 전통적인 이론을 옹호했습니다. 빈켄티우스는 성경이 참된 교리의 근본적인 자료이지만 해석상의 문제가 다반사이기에 하나님께서 무엇을 믿을 만한 것인가를 확정할 수 있도록 그 수단으로서 전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카톨릭교회 안에서 항상, 모든 사람에 의해, 모든 곳에서 믿어지는 사항(quod ubique, quod semperquod ab omnibus)이 분명히 계속적으로 주장되도록 해야 합니다. 곧 레랭의 빈켄티우스는 아프리카의 감독(아우구스티누스를 가리킴)이 예정에 관해 가르친 내용이 항상, 모든 사람에의해, 모든 곳에서 가르쳐지지 않기 때문에 그의 가르침은 가톨릭교회의 신앙이 아닌 혁신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마땅히 배격되어야 할 것임을 천명했습니다. 결국 아우구스티누스의 급진적 견해는 빈켄티우스 등의 논박에 의해 부각되지 못하다가 종교개혁기에 이르러 개혁신학의 핵심사항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찬
또 한 가지 본서의 흥밋거리는 성찬논쟁에 관한 것입니다. 곧 중세 초기의 양대 논쟁을 손꼽으라면 은총,예정 논쟁과 성찬논쟁일 것입니다. 특히 후자는 벌써 이 시기부터 라트랑에게서 연원된 이후 개혁파 성찬론의 씨앗을 배태하고 있었던 데서 그 특징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물론 라트랑의 반화체설은 테르툴리아누스, 키프리아누스 등에게로 소급되며 아우구스티누스가 완성한 것으로서 상징설이라 칭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대부분의 교부들과 중세 신학자들에 의해 수용되었던 반화체설은 성별된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실재적으로 받아들이는 실재론에 입각해 있었습니다. 곧 떡과 포도주 속에서의 실제적인 변화 혹은 화체로 인해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피와 동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양성이 필요할때
본서를 읽어보면 중세 초기 신앙인들이 어떤 관심사들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가톨릭교인과 개혁파 신자들이 여전히 그렇게 여기고있는 것처럼 당시에도 동일한 신학적 대결 구도가 배태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중세를 사상적으로 획일화된 세상으로 보아서는 안 될 곳입니다. 바로 이 책은 그런 중세의 사상적 다양성을 원전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는 한 치도 중세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회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현대 신학사상계는 자유의지파인 '펠라기우스-아르미니우스 대 은총파인 아우구스티누스, 칼뱅 구도 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고대 ;및 중세 초기에 이미 굳어져 있던 사상사적 구조를 반영하는 것입니다.